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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각

남한강, 나룻배,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나의 어린 나의 이야기>

by 부동산노마드 ^~^ 2025. 4. 4.

내가 살던 곳은 강원도 원주, 부론면이라는 작은 면이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충북 충주경기 여주가 바로 눈앞이었다.
위쪽 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충주, 아래 나루터로 가면 여주.
이 세 지역은 남한강이라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안다.
그 시절의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그 시간 속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남한강은 여전히 내 마음속을 흐르고 있다.**


그 강을 따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지금도 내 삶을 이끄는 가장 깊은 동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절, 키다리 아저씨와 함께 자라났고,
지금도 그 시절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약장수! 키다리 아저씨 생선장수!

 

🛶 세 도(道)가 만나는 곳, 우리 동네

 

물길**을 통해 엮여 있었다.
그 물길은 배만 실어나르는 게 아니었다.
사람, 장사, 인연, 이야기, 그리고 추억까지 모두 그 위를 흘러 다녔다.


 

🧺 장날의 북적임과 들썩임

 

5일장이 서는 날이면 강은 요동쳤다.
장사꾼들이 각지에서 몰려오고, 배가 분주하게 오갔다.
시장에는 국밥 냄새, 땀 냄새, 풀 냄새, 그리고 흙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흥정 소리,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날의 장터는 마치 한 편의 축제였고,


그 중심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 키다리 아저씨, 잊을 수 없는 한 사람

 

그중에서 나는 키다리 아저씨를 특히 기억한다.
어린 내 눈엔 정말 하늘까지 닿을 것처럼 키가 컸던 그분은
장터에서 생선장수를 하셨다.
하지만 장이 서면, 그는 그저 장사꾼이 아니었다.
기다란 의상과 분장을 하고 나타나,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난쟁이 아저씨와 함께 장터를 휘젓고 다니던 그분.
우리의 히어로였고, 장터의 상징이었으며, 어쩌면
그 시절 ‘인간성과 웃음’이 담긴 얼굴이었다.

그분은 이후 대구 달성공원에서 수문장으로 오랜 세월 일하셨다고 들었다.
언젠가 어른이 되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그 큰 키로, 그 굳은 손으로,
그분은 평생을 ‘사람과 마주하는 자리’에서 사셨던 것이다.


🌱 나도 자라났다, 그 키처럼

 

어릴 적 키다리 아저씨를 보며 “나도 저렇게 크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문득 돌아보니
나도 제법 키가 큰 어른이 되어 있다.
그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 시절 장터의 웃음과 생동감,
그리고 존경하던 어른의 모습이
내 안에서 자라났던 것일까.


🌊 그리고, 간절한 그리움

이따금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라도 하겠는데…”
강가에서 고기 잡고, 바지 걷고,
장날이면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고,
엿장수 아저씨가 소리치면 친구들과 뛰어가고,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은 그림처럼 멀어져 있다.
강 위를 건너던 그 배는 이제 없다.
장터의 풍물놀이도 사라졌고,
사람들은 다리를 건넌다.
하지만 내 마음속 그 자리에선
아직도 북소리가 울리고, 약장수의 외침이 들리고,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의 느긋한 걸음걸이가 남아 있다.

 

📷 마무리하며…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안다.
그 시절의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그 시간 속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남한강은 여전히 내 마음속을 흐르고 있다.


그 강을 따라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지금도 내 삶을 이끄는 가장 깊은 동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시절, 키다리 아저씨와 함께 자라났고,
지금도 그 시절을 닮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